말했나? 길치인 인간 둘이 만나 살면 굉장히 인생이 혼란스럽고도 피곤하다고…
말했겠지… 것도 아주 여러번.
그럼 이것도 말했나? 길치라는 치명적인 단점은 생활 곳곳에서 또 다른 변종으로 나타나 인간을 매우 허접하게 또는 시시한 인간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을…
그래,
오늘은 길치인 두 인간이 붙어 살때 변형되고 파생되는 또 다른 치명적인 단점들로 인해 겪는 고통에 대해 고찰하기로 하겠음.
스키마를 형성하기 위한 고랫적 사건부터 하나.
때는 바야흐로 2012년, 우리가 파리로 돌아와 정착하기 시작할 때 즈음의 일임. 고서방은 정치 전문 사진기자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도착하자 마자 곧 있을 대통령 선거 막바지 시즌이라 야근을 밥먹듯 하면서 바쁠 때였음. 그의 전담은 올랑도, 후에 당선되는 그 사람. 선거 운동하는 것도 쫓아다녔고, 당선일도 새벽부터 마크했고 이후에 그 인간이 배우랑 바람 났을 때도 기사에 쓸 사진을 찍었어야 했음.
파리의 노른자위는 샹젤리제이고 사건이 일어난 날 늦은 저녁까지 그는 정치판 상황을 취재하느라 바이크를 샹젤리제 근방에 주차한 후 생업에 열중하였음.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데려다 줄 바이크를 찾았는데… 없음… 참고로 바이크 뽑은지 한 달도 안 되었고 웬만하면 중고 사라 했는데 잘 탄다며 박박 우겨 완전 신삥으로 뽑았었음. 바이크 도둑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에 오장육부에서 간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 남자는 바로 인근 경찰서를 미친 듯 달려감. 파리에 흔해 빠진게 좀도둑이고 하루에 바이크 도난당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것임.
그리고 프랑스 경찰들은 절대 이런 사소한 문제에 집중해 주지 않음.
그들은 설렁설렁 남자의 도난 신고를 받고 이제 가 보라 함.
가라니? 어딜? 저승길을? 이대로 집에 가면 마누라 손에 죽을 판인데?
남자는 경찰서에서 비티기를 시전함.
바이크 찾아줄 때 까지 안 간다고 씨도 안 먹힐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음.
기다리는 건 네 자유, 하지만 우린 분명 기다리지 말라,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면서 경찰들은 이 남자를 가뿐히 무시했음.
그렇게 한 시간 가량 경찰들을 못살게 굴던 남자는 드디어 아무도 그에게 대꾸를 해주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일단 집에 죽으러 가야겠다…
경찰서를 나섬.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기운에 이끌리듯 아까 왔던 길과 반대 방향으로 걷게 되고…
그러다가 만난 새로운 주차장에 그의 바이크가 잘도 묶여서 주차되어 있었음.
그랬음.
애초에 바이크는 얌전히 있던 데에서 칠칠맞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방향과 장소를 완전 까먹은 인간이 엄한 데서 바이크를 찾아 헤매다가 없어졌다고 스스로 창조한 지옥을 다녀온 것.
하여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함.
너무 많아서 쓰기도 귀찮고 다시 떠올리면 혈압 터질까봐 겁나서 이쯤 하겠음.
이건 꽤 최근에 일어난 일임.
프랑스 제품 중 좋은 건 딱 약국제품, 화장품, 패션쪽 이정도이고
주방제품은 옆나라 독일 것이 훨씬 좋고, 플라스틱류도 독일 것,
여러 생활용품들이 독일이나 스웨덴 이런 진지한 나라의 제품이 좋음.
그런데 그 나라 제품들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비쌈.
살면서 꼭 필요한데도 이상하게 여기에 돈 쓰면 내가 너무 사치하나 싶은 그런 물품들이 있음.
다들 인정?
여러가지가 있겠지만서도 그 중 하나가 빨래 바구니임.
고작 세탁기에서 건조대까지 옮기는데 쓰는 그 바구니에 돈을 많이 들인다는 것이 영 양심이 걸리는
이상한 청렴결백함을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바
나 또한 범인의 하나로서 빨래 바구니는 절대 비싼 걸 사지 않고 있음.
그런데 프랑스 마켓 브랜드(물론 만든이는 중화민족)빨래 바구니는 희한하게 한 달 쯤 되면
종이도 아닌데 마구 찢어지는 수준으로 망기짐.
그래도 테이프 붙혀가며 꾸역꾸역 쓰다가
어느 날 그 깨진 플라스틱 사이에 손이 껴서 피를 보면 욕을 한바가지 한 뒤 버리고 새로 삼.
사망한 그 마켓 바구니를 또…
여전히 나는 빨래 바구니에 돈 쓰는 건 양심에 걸리니까.
난 참으로 양심적이니까.
몇 번째 새로 산지 기억도 나지 않는 마켓 빨래 바구니가 또 마구 깨진 상태였는데
이번엔 오기가 남.
절대 안 살거다.
이게 가루가 될 때 까지 쓸거다!!
비가 2주도 넘게 계속 내리던 어느 계절,
빨래는 자꾸 늘어나는데 기온도 낮고 습도 너무 높아 빨래가 마르질 않는 거임.
하는 수 없이 빨래 보따리를 싸들고 마켓의 건조기를 만나러 옴.
30분에 무려 만원으로 그 돈이면 새 마켓 바구니 하나 살 수 있음.
우리 집만 비 오는거 아니니까 앞에 이미 두 팀이나 대기타고 있고
한 시간은 족히 기다리게 생겼음.
장도 보고, 마켓 근처 산책로를 한 네 번 왔다갔다 하고 겨우 우리 차례가 되어
빨래제군을 건조기에 몰아넣고는
차 안에서 각자 핸드폰 세상으로 빠져들어감. 3
0분 코스로 넣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40분이 흘렀고
부랴부랴 우리 빨래를 찾으러 건조기 앞으로 뛰어 갔는데
떡하니 우리 빨래통이 보이고 거기 안에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게 보임.
아, 우리 빨래가 끝났는데도 찾으러 안 오니까 우리 빨래통에다가 넣어두고 본인 것을 돌렸나 보다…
어…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절대 내 스타일이 아닌 살색 레깅스며 양모 이불이며
낯설기 짝이 없는 빨래들이 잔뜩 들어 있음.
뭐지… 뭐지… 길치라는 치명적 장애를 가진 두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빨래 바구니 근처에 상당히 화가 나 있는 얼굴을 한 아저씨를 향해 외쳤음.
“이거 우리 빨래 바구닌데요!!”
아저씨는 잠시 당황했음. 그러나 이내 그도 지지 않고 큰 목소리로 답함.
“아냐! 이거 내꺼야!!”
“아니예요. 이거 우리 꺼예요. 보세요. 여기 여기 깨졌죠? 우리 꺼예요.”
“아 아니라고!! 내꺼라고!!”
아저씨는 이제 매우 불쾌해졌음.
세상 억울하다는 태도를 여실히 보이는 그의 어필에 잠시 자신감이 떨어진 고서방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여전히 당당함.
흥! 어디서 메쏘드 연기야!
“아저씨, 이 썩은 빨래 바구니 어디 어디 부서졌는지 제가 너무 잘 안다고요.
여기 여기 여기 보이시죠?
이거 우리꺼예요!”
“아니 마담!!
내꺼라고. 내가 오늘도 이거 들다가 손가락 긁혔다고! 이거 봐봐!!”
남자는 이제 상처까지 나한테 보여주며 호소중.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콕콕…
거지 같은 빨래 바구니 때문에 실랑이 한다는게 짜증이 왕창 나 있던 참에 사납게 돌아보니 고서방이 서 있음…
우리의 거지 같은 빨래 바구니를 옆에 들고…
그랬음.
우리 바구니는 애초에 우리 차 트렁크에 있었음.
그런데 사람이 닮은 경우는 있다 치자…
어쩜 그렇게 색도 같고 깨진 곳도 같은 거지 같은 빨래 바구니가 세상에 두 개나 존재할 수 있지?
결국 우리는 아저씨께 진심을 담아 사죄했고
마음이 풀린 아저씨와 마켓 거지 빨래 바구니 저주를 한 십분 신나라 했음.
그날 나는 바구니를 버렸고, 태어나서 사 본 빨래 바구니 중 가장 비싼 5만원짜리를 샀으며
그걸 지금 2년 넘게 잘 쓰고 있음.
예쁘기도 예뻐서 마켓에 가져가도 우리 바구니와 같은 바구니는 아직 보지 못함.
우리 차는 흰백 벤츠인데 매우 흔한 모델임.
그러나 약간의 특이 사항은 AMG 임.
즉 이 모델 자체는 밖에 나가면 한 열 대 만나지만 AMG는 잘 없다는 얘기임.
그날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주 자연스럽게 멀리 보이는 우리 차를 향해 다가가며 키를 연신 누르고 있었음.
안 열림?
아… 이놈의 열쇠는 배터리 잡아 먹는 재주가 있나…
분명 최근에 배터리 사서 낀 것 같은데 안 열림…
차에 다가가서
‘왜 안 열리는거야? 열려라 참깨!’
이딴 시덥한 소리를 낄낄대면서 문을 마구잡이로 열어보려고 하는 찰나…
뒤에서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
“아니 왜 그래요! 내 차예요!!!”
“네??”
그제사 정신 차리고 번호판을 보니…
우리차 아님.
그 날도 모르는 이에게 백배사죄하는데
아줌마가 의미심장하게 마구 웃어댐.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길게 웃음…
왜? 그리 내가 멍청해 보인다고?
“아하하하. 사실은…으하하하….
저번날에 내가 마담 차 근처에서 막 차키 들고 빔 쏘고 난리도 아니었다우 ㅋㅋㅋ
한참 그러다가 둘러보는데 내 차가 저쪽에 있더라고 ㅋㅋㅋ”
말했나?
가장 큰 위로는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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