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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France

75008 Chanel 왕국에서 만난 사람들 - (1) 샤넬 매장의 커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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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구에는 샤넬이 골목마다 있다.
17구, 15구 타지역에는 샤넬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동네에선 샤넬이 흔하다.

어른들의 세일러문 요술봉이랄까
그 로고가 갖는 희한한 마력에 빠진 여자들은 전세계에 널렸고
능력이 되면
혹은 어쩌다가 여유가 생기면
또 어떤 이는 이도 저도 아닌데 세뇌된 듯 빚으로라도 샤넬을 갖고 싶어한다.

관찰이 취미이자 직업인 나는 샤넬 매장에 가는 것이 재밌다.
그 안은 또 다른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에.

짧다면 짧은 그 순간에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곤 하는데
어제 다양하게 본 것들 중 하나를 먼저 얘기해 볼까한다.

바로...

샤넬 매장의 커플들.

나 처럼 혼자 매장에 온 이들도 있고
모녀가 함께 오는 경우
친구끼리 온 사람들도 있지만
꽤 많은 조합은 커플들이다.

그중에서도
허니문을 파리로 온 김에 쇼핑하는 젊은 부부가 꽤 많고
나이가 있는 노부부들
재력이 있어 보이는 남자친구가 선물을 하러 들어온 경우...

아,
참.... 나도 남편 있지만
나는 절대적으로 샤넬 매장을 혼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이유는 좀 의외일수도 있겠지만
남편과 들어가면 갑자기 샤넬 매니저로 빙의한 남자가 자꾸만 내게 이것 저것 생각 없었던 다른 제품까지
권해가며 충동구매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매장으로 들어가 구경하고
남자는 따로 사진을 찍으러 거리를 헤맨다.

그래,
내가 어제 관찰한 커플들 이야기.
어떤 이론을 세우고 관찰했더니 놀랍도록 대부분 그러했다.

제일 똑같은 사람들은 아시안 커플이다.
한국, 중국, 일본
희한하게도 성향이 다른 이 삼국의 커플들이 샤넬 매장에서의 행동은 똑같다.

우선 그들은 서로 거의 말이 없다.
말을 해도 매우 소곤댄다.
돈 쓰러와서 상당히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다.

샤넬 매장의 프로세스는 성질 급한 이에겐 꽤 성가실 만큼 지루하게 길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 깡봉지점 같은 경우
붐빌 때는 대기 시스템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올려두고 나가서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고 문자 받으면
매장 입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정도 아니더라도 우선은 들어가서도 한 20분은 기다려야 하고
웨이팅 하는 곳은 신발이 있는 섹션의 오픈 카우치
커플끼리 앉아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들은 서로 대화가 별로 없다.
혹은 핸드폰에 각자 빠져 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매니저를 배정 받고
그 매니저가 안내하는 매대에 앞에 가서 자리한 후
원하는 가방이나 제품을 말하면 매니저가 매장을 돌면서 쟁반에 제품들을 담아 와
고르게 해준다.
아시안 여자들은 가방을 이리저리 매 보면서 거울을 보다가 같이 온 남자를 돌아본다.
거의 그들은 수화 같은 대화를 한다.
결정도 꽤 빠른 편이다.

하지만 전세계 연인 공통
특히 아시안들은 더욱...
구매후 자랑스러운 샤넬 쇼핑백을 매고 밖으로 나서면
그들만의 포토타임이 이어진다.
찍고 또 찍고
여자가 검열을 하고
마음에 안 들어하면 남자는 또 찍는다.

나는 사실 어제 윈도우에서 본 로고 반지가 마음에 들어서 샤넬 매장 세 군데를 들렀는데
결국 세 번째 매장에서 아직 출시되지 않았고 출시전 미리 디피하는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비보를 듣기까지 한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와중에 한 커플을 관찰하게 된다.

호주 혹은 캐나다?
영어를 쓰는 아주 평범한 커플
아니, 평범하다는 것은 바깥에서의 기준이고
샤넬 매장안에서는 약간 특이할 수도...
티나게 화려할 필요는 없어도 샤넬 매장 안의 사람들은 나름 신경쓴 티가 나는데
어느 수준 이상의 브랜드 옷 정도는 입었다는 이야기다.
진짜 막 입은 것 같은 중국인들도 브랜드를 눈여겨 보면 구찌 루이비통 이렇다.
그들은 대부분 신경 써 입어도 무례해 보이니까 제외하고.

그 평범한 백인 커플은 남자는 때가 많이 탄 백팩을 매고 있고
여자는 자라 원피스를 입고 두꺼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여행객이다.
영어가 유창한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매니저가 그들의 담당으로 배정이 되었고
너무 행복해 보이는 여자가 매장안의 모두가 들을 만큼 큰 목소리로 격양되어 떠들기 시작한다.

"오늘 나의 첫 샤넬 백을 사러 왔어요!!!"

줄리아 매니저는 살짝 당황했다.
대부분은 샤넬을 처음 왔어도 여러 번 온 것처럼 최대한 연기하니까.
이 여인은 관념을 깨고 있다.

매니저는 그렇다면 가장 클래식한 2,55 라인을 하면 좋겠다고 노련하게 대응하면서
샤넬 백이 왜 중요한지를 여자에게 간단히 연설한다.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중요한 모임,
나를 돋보여야 할 때 최고의 악세사리는 단연코 샤넬입니다.
샤넬은 당신의 품격을 바로 업그레이드 해주니까요."

직업인으로서 매우 지당한 이론을 전달하자 첫 샤넬을 구매하러 온 여자가 더욱 환하게 웃으면서
당연히 그러하다
그러니 나에게 클래식 라인의 블랙 백들을 몇 개 소개해 달라고 한다.

매니저는 긴 다리를 십분 활용해서 매장 전체를 빠르게 돌아다니며 쟁반에
딱 클래식한 샤넬 백 몇 개를 모아왔다.
이제 저 여자는 다른 이들처럼 하나씩 매고 거울 앞을 왔다갔다 하겠지...

어느새 리얼 드라마에 폭 빠져 과연 저 여인의 생애 첫 샤넬 백은 무엇이 될 것인가
무척 흥미진진한 참인데 아 맞다... 나 반지 사러 왔지...
드디어 내 담당 매니저가 나타났다. 나이가 꽤 있는 우아한 마담으로 딱 보면 안다.
이 사람은 꽤 직급이 높은 층 매니저쯤 된다.
그리고 역시 그녀는 매우 노련하다.
내가 바깥 윈도우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더니 아까 말했던 그 정보를 말해준다.
마케팅으로 출시 전 미리 디피를 하고 아직 판매는 안 한단다.
내가 이 김빠지는 소리 들으려고 30분을 앉아 있었나 화가 날수도 있지만
생애 첫 샤넬백 커플에게 정신이 홀려서 반지 비보는 아무래도 좋다.
그런데 갑자기 매장안이 찬물을 끼얹은듯 조용하다.
그것은 매우 주목을 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왜냐면 지금껏 10분 넘게 생애 첫 샤넬백 여인의 흥분된 하이톤의 영어가 온 매장을 뒤덮고 있었으니까.
그 소리가 일순 사라진 것은 당연히 매장안의 모든 이를 단결시키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당연히 나도...
내 매니저도...

줄리아 매니저가 모아온 백들 중 가장 저렴한 것이 7천 유로라는 소리에
커플이 정말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진다.
몰랐나 보다...
갑자기 여인은 남편 눈치를 보고
백팩을 내내 맨 채 매장에서 주는 물을 마시고 있던 남자는 슬그머니 물컵을 내려놓는다.
여자는 계속 남자를 보고 있는데 남자는 눈길을 피한다...
어떡해...
노련해도 프렌치라 표정을 못 숨기는 줄리아 매니저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지는 것이 보인다.
그녀는 알고 있다.
오늘 이 커플은 가방을 사지 않을 것이다...

너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살짝 민망해져 얼굴을 돌리다가 같이 깨닫고 얼굴을 돌리던 중인 내 매니저와 눈이 마주친다.
서로 멋적게 웃는다...

매니저는 친절하게 반지가 나올 때 쯤 전화를 해주기로 하면서 아주 낮는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저런 커플 의외로 많아요..."

샤넬은 예의바르다.
물론 내 구매 히스토리가 그들의 시스템에 떠 있으니까 단골 대접을 해주는 걸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가는 나를 2층에서 1층 현관까지 매니저가 직접 에스코트해서 배웅하고
문도 열어준다.

나와서 남편을 만나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아까 그 백팩 커플을 스치게 되었다.
그들은...
다섯 보 이상 떨어져서 일행이 아닌 듯 걷고 있었고...
슬프게도 그녀의 손에 커다란 샤넬 쇼핑백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