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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France

2022년을 보내며... 마지막 날들의 블루스

by Madame France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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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때

속담과 사자성어의 여왕이었는데

뭘 굳이 와닿아 썼다기보다는 그저 내가 이만큼 유식하다...는걸 또래한테 보이고자 했던

유치한 허세쯤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어쩌면 그렇게도 선조들은 현명했나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특히나

내가 뼈저리게 공감하는 말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고...

 

이번에는 둘째다.

 

이번 2주간의 방학을 시작하던 첫날

그녀는 아주 짜증 나기 짝이 없는 소식을 전했다.

 

"엄마... 나 버스카드가...

아무리 찾아도 없어...."

 

WHAT!!!!!

 

무엇이든 소지품 제대로 간수 안 해서 잃어버리는 짓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데

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짓을 밥 먹듯 하는 남자와 사는 형벌을 받은 나

그런데 새끼까지...

특히 이 아이는 전적이 꽤 화려한 편이다.

 

어찌하여 내가 그리 펄쩍 뛰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이 '버스카드'라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이미 이 버스카드 때문에 올여름 방학 말미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올해부터 같은 중학교를 다니게 된 1,2번은 드디어 우리의 핸들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 통학하게 되었고,

버스카드는 편도에 2유로씩 그러니 애들이 하루 4유로를 들여야 학교를 오갈 수 있다.

이것은 꽤나 큰돈이고 둘이면 하루 8유로씩 한 달에 25일쯤 간다 치면 200유로

한화로 거의 30만 원.

이렇게 생각해보면 약간 미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애들 학교 보내는데 한 달 30만 원? 학원비냐.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찾아보니 학생은 재학증명서, 거주 증명서, 학교 보증 등을 준비해 버스회사에 신청하면

일 년 동안 무제한 프리로 쓸 수 있는 카드가 나오는데 금액은 일 년에 100유로, 14만 얼마쯤.

그러나

프랑스인인 듯 프랑스인 아닌 남자가 멋도 모르는 주제에 방학 끝날 때쯤 하면 된다고 혼자 여유 피우다가

말미쯤 갔더니 이게 발급되는데 2주에서 한 달 걸린다고... 청천벽력!

그래서 애들은 카드가 나오기까지 생돈 주고 티켓 사서 학교를 다녔고

그렇게 일주일쯤 생 돈을 날리고 있을 때

애들 얼굴을 익힌 버스 운전사 아저씨들이 그냥 타라고 배려해주는 그런 행운을 얻었고

다행히 카드는 2주 만에 나와 한시름 놓았었다.

 

그런데!

그 귀한 버스카드를 이번에는 제 손으로 잃어버렸다는 2번.

화가 나겠나, 안 나겠나...

그리고 프랑스엔 지식인 이딴 거 전혀 없어서 아무리 구글을 뒤져도

카드 잃어버렸을 땐 어찌해야 한다고 아무도 제대로 된 가이드를 주지 않고

결국 네 자존심이 지금 중요하냐고 닦달하여 이미 잃어버린 전적이 있는

남의 집 밉상들에게 연락을 취하라고 지령을 내렸더니

긴급하게 채팅을 해대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솔루션을 보고했다.

 

"엄마...

그게... 그 버스 회사 또 직접 가야 하고....

재발급받는데 18유로 내야 한대..."

 

버스카드에 또 돈 써야 하는 것도 열받고

무엇보다 그 버스 회사라는 데가 아주 험한 오지에 있는데

거기까지 한 시간 넘게 차 몰고 가야 하는 건 더 짜증이고...

 

곰곰 생각해 보니까

진짜 화가 난다.

대체 애 키우면서 그들의 부주의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어미인 내가 되는 이 불합리한 현실이

몇 번째인가.

 

자고로 고통은 나누라 했다.

그래서 나는 고통을 나누기로 했다.

 

"너 그거 알아?

나 거기 가기 싫어. 그래서 안 갈라고."

 

-뭐?? 그러면 내 버스카드는?

 

"좀 더 열심히 찾아봐. 어디서 잃어버렸나...

분명 동네 길바닥 아니면 집이야. 더 꼼꼼히 찾아.

바람에 날렸을지 모르니까 정류장 뒤에 옥수수밭도 개랑 같이 뒤져."

 

버스카드, 급식카드 등은 소중하게 항상 가방 앞주머니에만 넣는 걸 습관으로 해라.

제발 네 외투 주머니를 믿지 마라.

그건 임시 보관용이지 언제 쓸려서 흘릴지 모르는 믿을 수 없는 저장소다.

 

이번 기회에 그녀에게 스트레스라는 것을 주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포커페이스에 아이는 일단 시키는 대로 방을 다시 뒤지고

가방 안의 노트를 하나하나 열어보고

옥수수밭을 동생이랑 개까지 끌고 가(아무 소용없음) 뒤지고

동네 길바닥을 뚫어져라 보면서 몇 번을 왕복했다.

(동네 할아버지가 보고는 돈 찾냐고 하면서 2유로를 주셨음)

나름 노력했으나 카드가 없다고 아이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어쩔 수 없네... 넌 그럼 버스 타고 학교 못 가네..."

 

-그럼 엄마나 아빠가 차로 데려다주는 거?

 

"아니네... 옛날처럼 걸어가던가... 아님 네가 기를 쓰고 다시 버스카드를 찾던가."

 

그렇게 하루동안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줬고 좀 효과가 있겠지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저녁에 아주 평화로운 얼굴로 자매들과 근심걱정 없이 깔깔대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자

울컥한다. 저게 왜 행복해하고 있지? 버스카드는 잊은 건가...

 

"너 걱정 안 돼? 다음 주 개학인데 너 카드 없는데?"

 

-어쩔 수 없지 뭐. 난 버스카드 없어서 학교 못 다녀 중학교 중퇴한 유일한 인간이 될 참이야.

 

ㅡ.ㅡ

 

 

그래서...

버스카드 때문에 친딸 가방끈을 자를 순 없는 어미와 아비가 한 시간 반을 달려온 곳.

버스 회사...

 

이 날 날씨가 얼마나 심한 칼바람의 무도회장이었는지...

비구름 몰고 다니는 남자와 사는 내 운명이 그렇지.

 

연말이고 바캉스 쓰는 직원이 많아 버스회사 사무실엔

아가씨 한 명이 평화롭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 찾아봤어요?

혹시 버스에 두고 내렸는지 한 번 더 확인해 드리죠.'

 

뭐랄까...

우리만 이런 게 아닌 게 아주 뻔하니까 좀 위로가 된달까...

아가씨는 친절하게 분실물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더니 오뎃이라는 이름의 카드는 없단다.

(그런데 웃긴 게 전화하는 와중에 동네 친구 가브리엘의 카드는 있다는 소식을 덤으로 받게 됨.)

결국 재발급을 받은 그녀의 카드

 

버스카드 다시 생겨서 기쁜 애

 

또 딸이 마냥 기쁜 꼴을 못 보는 어미가 말했다.

 

"너 이제 18유로 용돈에서 깔거니 그런 줄 알아."

 

WHAT!!

 

의외로 학교 못 간다 했을 때의 평화로움은 온데간데없고

18유로 깔 거라니까 애가 얼굴에 심하게 그늘이 드리워진다.

 

 

 

슈슈를 어떤 비율로 하면 가장 예쁜가

이번콘셉트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달리고 싶기 때문에

많은 연구를 했다.

만들고 또 만들고

그때마다 집에서 숱이 제일 많은 이 아이에게 테스트를 해보는데...

 

아홉 번째 슈슈를 머리에 동여매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활짝 웃는 얼굴로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네가.. 지금 기쁠 때가 아닌 듯...

 

오 예!

나 이제 18유로 다 갚았어!

출처 입력

뭔 소리여...

 

모델을 공짜로 쓰는 게 어딨어.

내가 엄마니까 싸게 책정했어.

한 번 시착에 2유로씩.

이제 9번 했으니까 다 갚었어!

 

 

아니...

난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는데?

 

엄마도 첨부터 내 용돈에서 18유로 깔 거란 얘기 안 하고 갑자기 말했으니까

나도 모델 다 하고 나서 말하는 거야.

 

ㅡ.ㅡ

주여...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생각지 못했던 연말 선물

 

메이컵을 정말 좋아하는 내게 천국 같은 샵이 파리 7구에 있다.

원래 백작가였던 가문에서 최고의 메이컵 제품만을 아주 적은 라인 생산하는데

샤넬, 디올 이런 거 다 싸구려로 만들어버리는 진정한 럭셔리 화장품부띡

 

가죽 케이스에 이니셜을 넣어 따로 주문해 안의 립스틱 리필만 갈아주면 되고

아이섀도 역시 마찬가지

무엇보다 이 집의 메이컵 브러시들은 정말 마녀의 그것이다.

 

그 집 매니저가 직접 손 편지를 써서 감사 연말 인사를 해왔다.

더 감동인 것은 나를 위해 영어로...

(분명 쇼핑할 때 프랑스어만 썼는데 내 악센트가 너무도 쉽게 티가 나나보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파리 최고의 쇼콜라티에의 다크 초콜릿이라고 보내왔다.

많은 초콜릿을 이 나라 살면서 섭렵해 보았지만

 

단연 최고

이렇게 세상의 모든 맛을 담은 아르티장 초콜릿은 또 처음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물.

단순히 고객과 판매자가 아닌 그 이상의 관계를 갖게 해주는 선물

 

이렇게 또 더 배운다.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뭘 하나 선물 하더라도 마음까지 제대로 눌러 담아 정성으로!